저세상 개발자 2021. 12. 9. 01:01

내 나이 28 (28.9 정도..?), 최근 2년 사이에 인생에서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최근에 또 한 번의 인생의 변곡점이 있었고, 오늘은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글이 길어져서 나름의 목차로 나눠봤다.

1. 20대 중반까지의 길 - 관성 / 힘과 일, 노력

2. 첫 직장

3. 퇴사 및 도전

4. 새로운 시작

 

관성


관성은 어떠한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이다. 물체에 알짜힘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멈춰있는 물체는 그대로 멈춰있으려 하고,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같은 속도로 계속 운동하려 한다.

 

내 인생은 여태 그저 관성대로 흘러왔던 것 같다.

 

어릴 적 어디선가 보았던 기계 장치들과 항공기가 멋있어보였고, 그 때 그저 막연하게 관심있었던 그 길로 계속 흘러갔다.

다른 분야나 과에 대한 별 다른 고민 없이 자연스레 기계공학과에 진학했고, 거기서 배우는 것들이 내가 진정으로 하고싶어 하는 일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상태로 4학년을 맞이했다.

4학년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싶은지 잘 알지 못한 채, 그저 주변 친구들을 따라서 기사 자격증을 따고, 뭘 해야할 지 몰라 일단 친구들을 따라 NCS 공부를 했다.

(참고로 NCS는 정말 최악이었다... 너무 재미 없어서 공부도 잘 안하고 그냥 공기업들 시험이나 치러 다녔다.. 공부하는 것보다 시험 치는게 재미있었다.)

 

힘과 일, 노력


내 인생은 대학교 4학년이 되도록 그저 흘러갔지만, 그 과정동안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인생이 가만히 두면 절대 굴러가지 않는다.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관성대로 계속 굴러가야하지만 현실에는 저항이 너무 많다. 최소한 저항이 하는 일만큼의 일이라도 해줘야 인생이 계속 굴러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인생은 멈추게 될 것이다.

 

나는 딱히 목표도 없었고, 효율적으로 산다는 명목으로 딱 그 저항만큼의 일만 해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기계, 항공 분야로 계속 흘러갔다. 그러던 중, 4학년 2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방학에 우연히 프로그래밍 공부를 접하게 되었다. 각종 매체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5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떠들어대니 그저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이 때의 호기심이 단순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인생의 목표점이 생겼던 것 같다.

나는 참 열정도 없고 겁도 많은 사람이다. 아니, '라고 생각했었다.'라고 하는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새로운 일을 하는 데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에 관해서는 달랐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고, 한 달간 즐거운 꿈을 꾼 것처럼, 이제는 다시 기계과 학업으로 돌아가 졸업 논문을 쓰고, 졸업과 취업 준비를 해야했다. 원래의 나였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목표도 없이 꼭 해야하는 일들만 의무적으로 하곤 했으니까. 근데 이번은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그저 흘러가는 것 이외의 일을 해보았다. 주변에서 한다고 따라하는게 아니라 내가 하고싶은 일을 했다. 한 학기 휴학을 하고 모바일 게임을 하나 개발했다. 내 블로그에 소개되고 있는 RGB - The Puzzle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사실 대단히 재밌는 게임도, 기술적으로 뛰어난 게임도 아니다. 게임 자체로만 놓고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최적화도 안되어있고, 재미도 없고, 이용자도 없다. 하지만 게임 외적으로는 나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가 나에게 있어서는 도전이고, 열정이고, 끈기와 인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한 학기 휴학 후, 복학하여 졸업 및 취업 준비를 했다. 이미 프로그래밍을 접한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목적지를 바꾸기에는 한 학기라는 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당장은 실력도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기계공학 분야도 내가 정말 오랜 기간동안 관심있었던 분야였기 때문에 내가 관심있는 것들, 내가 공부한 것들을 융합할 수 있는 분야에 취업을 했다.

 

첫 직장


운이 좋게도 졸업도 하기 전에 내가 바라던 분야로 취업을 했다. 평소에 항공기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항공기를 개발하는 회사에 SW엔지니어로 취업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컸다. 나는 무늬만 SW 엔지니어였고, 호칭만 연구원이었다. 실제로 하는 일은 내가 기대한 그런 일이 아니었고, 대부분 운영과 잡무였다. 분위기는 매우 수직적이었고 회의에서는 실무자들조차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개발팀이었지만 개발은 하지 않았다. 그 곳에서의 미래를 그려봤을 때,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개발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배워두면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도 취업해서 힘들어하고 하는 모습을 보여 '다 그런건데 내가 예민한거야, 이상과 현실을 구분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보려 노력했다.

내가 입사한지 9개월 쯤 되었을 때, 우연한 계기로 카카오 공채 모집 공고를 봤다. 서류 제출도 없고 코딩테스트부터 본다기에 그냥 재미로 시험이나 칠 겸 무턱대고 지원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턱걸이로 코딩 테스트를 붙었다. 2차는 REST API로 서버 통신하며 푸는 코딩 테스트였는데, 개념도 잘 모르는 상태로 구글링하면서 삽질해서 진짜 운이 좋게도 2차 코딩 테스트도 통과했다. 2차 코테를 붙으면 면접 전에 '미리 만나는 카카오(이하 미만카)' 라는 카카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때, 미만카를 보면서 이직을 결심했다. 문화도, 성장 가능성도, 모든 요소들이 이직이 정답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직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은 내가 혼자 외딴 촌구석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컴퓨터공학 전공 공부부터 했다. 카카오 면접을 준비하면서 정말 너무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정말 이 개념들을 다 익힐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한 개념이 맞는걸까 등등 정말 혼자 끙끙 앓았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온라인으로 구한 스터디에서 스터디원분들이 정말 친절하게 많은 도움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카카오 면접을 통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 붙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지금도 많이 부족한데 이 때는 진짜 훨씬 더 부족하던 상태라 이 때 떨어진건 아쉽지도 않다. 그래도 면접 기회라도 얻어서 미만카에 참여해서 내가 살고있는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카카오 이후로도 몇 군데 코테를 붙어서 면접 기회를 얻었는데, 웹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면접에 들어가다보니 면접의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웹 공부를 하기에는 웹이라는 분야 자체가 너무 방대해서 어디부터 어떻게 공부를 해야할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기도 하고 회사 일도 바빠져서 공부에만 전념할 수가 없는 상태라, 일단 CS 공부부터 끝내자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CS 공부를 진행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이번 년도 카카오 공채 전에는 웹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던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및 도전


주변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나조차도 두렵기도 했다. 지금 회사가 아니라는걸 알아도 퇴사를 한다는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막말로 웹 개발자가 되겠다면서 웹 프로그래밍 경험도 없는 상태였고, 안정적인 직장을 나가서, 몇년이나 수입이 끊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몇 년이 걸릴 수는 있어도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게임 개발을 하면서 열심히 삽질하면 결국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으니까.

 

그렇게 카카오 합격해서 놀러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올해 6월, 1년 5개월 동안의 첫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짐을 바리바리 싸서 다시 서울 본가로 들어왔다. 당장 6월 말부터 시작하는 국비 교육을 신청해서 본가에서 수업을 들었다. 교육을 들으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 동안 내가 면접의 벽을 왜 넘을수가 없었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작은 프로젝트도 진행해보고, 웹 개발 전반적인 기본 지식을 배우고 습득하며 개발자가 되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올해 9월부터 열심히 카카오의 문을 두드려서 11월 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카카오 개발자가 되었다.

 

새로운 시작


나는 이제 개발자다. 하지만 아직은 스스로 개발자라고 소개하기가 조심스럽다.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갈 길이 아주 멀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나보다 실력도 지식도 경험도 훨씬 뛰어난 지원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카오에서 나를 채용한 것은 내 현재의 가치보다 나의 가능성에 투자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대에 부응하고, 나 스스로도 떳떳하고 멋진 개발자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연습게임이었고 이제부터 본 게임 시작이다. 이제는 인생에 목표가 있다. 다시 내 인생을 열심히 굴려보자.

 

 

마치며,

글이 정말 두서가 없다. 그냥, 나중에 언젠가 현실에 치여서 지치고 꿈도 미래도 희미해질 때, 내가 이런 생각과 열정을 가지고 개발자가 되었다는걸 다시 한 번 떠올려보길 바란다.